캘리포니아 북부 농촌 지역에서는 기술과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의료 서비스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엔로헬스(Enloe Health)는 자연 재해부터 인력난까지 다양한 과제에 직면해 왔다. 이에 CIO 톰 오스틴은 AI를 도입해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며, 동시에 협업 중심의 조직 문화를 통해 시스템의 비용 효율성과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치코의 비영리 의료기관 엔로헬스는 IT 기술을 활용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환자 진료를 지원하고 있다. 이 기관은 264병상 규모의 2급 외상센터인 ‘엔로 메디컬 센터(Enloe Medical Center)’를 비롯해 헬리콥터 구급 서비스와 다양한 전문 의료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2018년 발생한 대형 산불 이후 인근 파라다이스 지역의 주요 병원이 피해를 입으면서 엔로헬스의 의료 서비스 수요는 크게 증가했다.
도전을 기회로 포착하다
치코는 캘리포니아 주도인 새크라멘토에서 약 145km 떨어져 있어 인력 확보가 쉽지 않은 지역이다. 오스틴은 “대도시에서 출퇴근이 불가능한 일종의 ‘섬’ 같은 지역 사회에 가깝다. 하지만 한 번 합류한 인력은 치코를 좋아해 오래 머무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2025년 ‘CIO 100’ 수상자인 오스틴과 엔로헬스는 기술을 리스크 관리와 환자 서비스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그는 “IT는 비즈니스 운영과 환자 진료의 교차점에 있다. 업무의 노동 집약도를 낮추거나 더 많은 환자에게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운영 효율성을 높여 수익 창출을 이끄는 핵심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전 세계 헬스케어 산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술은 AI다. 엔로헬스는 AI를 통해 의료진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부담을 줄이고 있다.
오스틴은 “환자 진료실에 음성 인식 기반의 ‘앰비언트 리스닝(ambient listening)’ 기술을 도입해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자동으로 녹음하고 전사해 의무기록으로 변환할 수 있게 했다. 의료진이 소모하던 시간과 노력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어브리지(Abridge)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으로, 엔로헬스의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인 에픽(Epic)에 통합돼 있다.
이어 그는 “시간 절감 효과는 곧바로 의사의 만족도로 이어지고,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수익 증대로 연결된다. 이는 기술이 워크플로 효율성을 높여 의료진의 만족도를 높이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엔로헬스는 어브리지를 전면 도입하면 연간 수천 건의 추가 진료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스틴은 “의사 한 명이 하루에 단 2~3명만 더 진료해도 그 효과는 빠르게 누적된다”라고 강조했다.
규모를 뛰어넘는 경쟁력
이 같은 효과는 여러 병원을 운영하지 않는 중형 의료기관인 엔로헬스에 특히 중요하다. 방문하는 환자들이 대형 병원 수준의 첨단 기술과 의료 프로세스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오스틴은 “엔로헬스 같은 중형 의료기관에도 에픽 같은 시스템과 최고 수준의 사이버 보안, 인사관리(HR) 도구가 필수지만, 대형 병원처럼 8~10개 시설에 비용을 분산시킬 수는 없다. 그만큼 규모의 경제를 폭넓게 누리기 어렵다”라고 진단했다.
어브리지 AI 도구의 통합은 오늘날 조직 내 CIO와 IT 부서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에픽 시스템과 어브리지를 기술적으로 통합하는 과정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과제는 조직 문화의 변화였다. 오스틴은 “의사들이 진료 현장에서 새로운 AI 기술 사용과 관련해 환자와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법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교육했다. 기술 도입만큼이나 의료진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적 준비가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에픽 EHR 시스템은 엔로헬스를 비롯한 미국 내 다수의 의료기관에서 핵심 플랫폼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오스틴이 합류하기 직전인 2017년에 도입이 결정됐으며, 의사·간호사·기술전문가 등 다양한 직군이 참여한 다학제 팀이 선정 과정에 참여했다. 엔로헬스는 이후 에픽 시스템을 대부분 기본 설정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오스틴은 “가능한 한 시스템을 기본 상태로 두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다. 에픽을 표준 설정 그대로 유지할수록 유지보수 비용이 줄어든다”라고 설명했다.
엔로헬스의 경우 에픽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호스팅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유지보수는 전적으로 내부 팀이 담당하고 있다. 오스틴은 “이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IT 인력 180명 중 절반이 에픽 시스템 지원에 투입될 정도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팀이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최적화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이를 통해 자체 시스템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웃소싱을 늘릴수록 소프트웨어의 내부 작동 방식과의 연결성은 약해지는데, 엔로헬스는 이런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직접 운영 방식을 유지해야 오늘날의 헬스케어 환경에서 필요한 유연성과 민첩성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사이버 위협을 통제하는 법
엔로헬스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사이버 공격을 겪었다. 당시 사이버 공격은 전 세계적으로 급증했으며 이후에도 빈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엔로헬스는 일시적으로 시스템을 중단해야 했고, 기술팀이 복구하기까지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다만 다행히도 환자 데이터 유출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스틴에 따르면 이 사건은 오히려 엔로헬스가 사이버 보안 체계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전환점이 됐다. 엔로헬스는 팔로알토네트웍스(Palo Alto Networks)와 협력해 24시간 운영되는 보안관제센터(SOC)를 구축했고, 최근에는 클리어워터(Clearwater)와 계약을 맺어 가상 CISO 기능을 추가했다. 오스틴은 “현재의 인력난과 위협 환경에서 완전한 내부 보안팀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파트너십이 효율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해당 사건은 사이버 보안에 대한 조직 내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 오스틴은 “사이버 보안 인식에 대한 내부 관심이 매우 높다. 직원들이 외부 기관의 피싱 테스트에서도 매우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어, 사실상 보안팀의 연장선상에서 활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조직 전체의 경각심과 대응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사이버 위협의 빈도가 증가하지는 않더라도, 공격자가 침입에 성공할 경우 점점 더 정교하고 창의적으로 피해를 극대화하도록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를 통한 조직 통제와 혁신
기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조직 문화 구축의 가치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오스틴은 이런 문화가 IT 부서 내부뿐 아니라 엔로헬스 전체에 걸쳐 형성돼 있다면서, “IT팀과 함께 특정한 문화를 의도적으로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화는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조직에는 신뢰와 자신감, 그리고 용기를 기반으로 한 환경이 필요하다. 혁신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지능적 위험 감수를 뒷받침하는 문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오스틴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이 문화는 IT가 엔로헬스의 운영 전반과 환자 진료 프로세스에 깊이 통합되도록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IT팀은 의료진과 함께 병동 회진에 참여하거나 여러 부서가 함께하는 협업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한다. 오스틴은 “이런 참여는 IT를 조직의 일상적 요구사항과 긴밀히 연결시켜 준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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