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거주자의 고용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멕시코·콜롬비아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IT 인력에게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H-1B 비자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기로 한 결정은 미국 내 일자리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대신 ‘니어쇼어(nearshore)’ 국가의 외국인 IT 인력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여기서 말하는 니어쇼어링은 기업이 인건비를 줄이거나 숙련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자국과 가까운 국가의 인력을 고용하거나 업무를 이전하는 방식을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중순, 대형 IT기업들이 주로 활용하는 고급 외국인 근로자용 H-1B 비자의 최초 신청 수수료를 기존 수백 달러에서 10만 달러(약 1억 4천만 원)로 인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 같은 비용 인상이 미국 기업이 자국 내 근로자보다 낮은 임금으로 이민 노동자를 고용하는 관행을 억제할 것”이라며 “새로운 수수료 구조는 기업이 더 많은 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IT 채용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의 실제 수혜자가 미국 근로자가 아닐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러 IT 전문 분야에서 숙련 인력 부족이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이번 정책으로 가장 이득을 볼 쪽은 니어쇼어 인력과 니어쇼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인재 아웃소싱 기업 에맵타(Emapta)의 글로벌 기술 솔루션 담당 수석부사장 크레이그 버클리는 “미국 내 고급 기술 인력의 풀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비자 정책 변화로 이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새로운 수수료는 미국 외 거주 신규 신청자에게만 적용되지만, 인재 부족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이 때문에 H-1B 비자 비용 없이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오프쇼어링(offshoring, 지리적으로 먼 나라에 업무나 서비스를 외주로 맡기는 방식)이 미국 기업에 실질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국면
아웃소싱 전문 IT 리서치 기업 인포메이션 서비스 그룹(Information Services Group)의 최고 AI책임자 스티븐 홀은 “미국 내 인력 풀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정책은 니어쇼어 서비스 기업으로 비즈니스를 옮기게 만들 것”이라며 “IT 기업들이 글로벌 역량센터(GCC)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홀은 “H-1B 비자 사용에 따른 지속적인 리스크 때문에 기업들이 H-1B 비자 사용이나 후원을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게 될 것”이라며 “H-1B 인력의 비중이 미국 IT 노동력 전체에서 높지 않기 때문에 국내 고용에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오프쇼어링이나 GCC 활용 확대에는 상당한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멕시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에 인재를 보유한 니어쇼어 서비스 기업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이라며 “캐나다 IT 인력에 대한 수요도 증가할 수 있지만, 캐나다 역시 비자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니어쇼어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 잘라소프트(Jalasoft)의 최고매출책임자 셀레스트 앤더슨 역시 “니어쇼어 서비스 산업이 이번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것”이라면서도, “미국 내 인력에게도 일부 긍정적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의 정책은 견습 프로그램, 최신 자격증을 갖춘 커뮤니티 칼리지 졸업생, 다른 STEM 분야에서 경력을 전환한 인력, 군 출신 인력, 그리고 복귀 프로그램 참가자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다”라며 “이를 위해 미국 기업은 교육과 유지 프로그램을 재정비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이런 투자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미국 내 핵심 인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니어쇼어 팀을 병행 활용해 민첩성과 확장성을 확보하는 ‘이중 전략’을 채택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내 인재가 부족한 영역에서는 니어쇼어 인력이 그 공백을 메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앤더슨은 “멕시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미주 전역에서 IT 인력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며 “특히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신흥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디지털 인프라와 교육 인재 양성 투자를 통해 새로운 전략적 차별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라틴아메리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에맵타의 버클리는 니어쇼어 인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더 멀리 떨어진 지역의 아웃소싱 인력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오프쇼어링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미국 팀과 동일한 근무 시간을 유지할 수 있는 IT 인력을 제공하고 있다”며 “필리핀,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인도, 마케도니아, 베트남, 콜롬비아 등 고학력 IT 인재가 풍부한 시장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버클리는 “이번 정책 변화는 미국 기술기업들이 핵심 인재를 확보하는 방식을 재검토해야 함을 보여준다”며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 품질관리(QA), 데이터사이언스, 사이버보안, 클라우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대체 인재 확보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상황을 관망할 수 있겠지만, 많은 기업들이 이미 글로벌 아웃소싱을 포함한 대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민 전문 변호사 로렌 록은 트럼프의 새로운 정책이 미국 기업의 IT 인재 유입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에는 낮은 H-1B 수수료 덕분에 IT 기업들이 학생비자(F-1)로 외국인 학생을 미국에 유학시키고, 졸업 후 최대 3년간 근무할 수 있는 실무연수(Optional Practical Training, OPT) 프로그램으로 전환한 뒤, 다시 H-1B 비자로 전환하는 구조를 활용해왔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수수료 인상으로 미국 IT 기업들은 이 과정을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 됐다고 록은 말했다. 그는 “H-1B 비자 비용이 10만 달러에 달하면서, 기업들은 여전히 이 학생들을 OPT 프로그램으로 채용하겠지만, OPT가 만료된 후에는 미국에 남기보다는 캐나다나 멕시코의 니어쇼어 오피스로 배치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우리는 미국 대학에서 최고 인재를 교육해 해외로 내보내고, 그들이 다시 미국 기업과 경쟁하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니어쇼어의 복잡한 현실
록은 “니어쇼어 인력이 고비용 H-1B 비자의 매력적인 대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복잡성을 수반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형 다국적 기업은 이미 국경 간 법적·세무적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며 “이들에게 H-1B 인력을 토론토, 밴쿠버, 멕시코시티 등 기존 해외 지사로 옮기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운영 조정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했다.
록은 “이들 대기업은 이미 국제 인력을 관리하기 위한 법적·인사 시스템에 투자해왔기 때문에, 10만 달러의 H-1B 수수료는 그들이 이미 추진 중인 인력 이전을 더 빠르게 촉진하는 역할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소기업은 상황이 다르다. 그는 “이들은 세무상 상설거점 문제를 감당하거나, 외국 노동법을 준수하거나, 국경 간 데이터 프라이버시 규제를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다”며 “결국 10만 달러의 H-1B 수수료는 단순한 이민 비용이 아니라, 니어쇼어링을 택할 경우 국제법·운영 전반에 걸친 복잡한 문제를 동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록은 “결과적으로 이번 조치는 대기업에는 니어쇼어링을 통해 비용을 회피할 수 있는 유연성을 주지만, 중소기업에는 해외 인재 접근 기회를 사실상 차단하는 ‘이중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