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임직원 절반이 매일 AI 어시스턴트를 사용한다면, 기업의 일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질까? 많은 기업이 여전히 ‘AI를 어떻게 써야 할까’라는 질문을 두고 머뭇거리는 사이, 일찍이 행동으로 답한 기업이 있다. 바로 동원그룹이다. 동원그룹은 지난 2023년 국내 기업 중 선제적으로 생성형 AI를 도입했다. 전사적 배포가 이루어진 지 2년이 지난 지금, 누적된 데이터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정착기’에 들어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Jongsung Park, DT Division CIO, Dongwon
이처럼 빠른 AI 전환의 중심에는 동원그룹 DT본부가 있었다. 전 세계가 챗GPT 열풍으로 술렁이던 2023년 동원그룹에 합류한 박종성 지주부문 CIO 겸 DT본부장은 생성형 AI를 분명한 전환점으로 봤다. 그는 입사 직후 여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를 이끄는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그룹의 현실에 맞는 사내 생성형 AI 구축을 추진했다. 그 결과 탄생한 ‘동원GPT’는 지금 임직원 절반 이상이 일상 업무에 매일 활용하는 핵심 도구가 됐다.
비전과 실행력이 만든 동원GPT
그렇다면 동원그룹이 이처럼 빠르게 AI를 도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박종성 CIO는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동원그룹이 AI 전환에 속도를 낼 수 있었던 데는 김재철 전 회장의 철학이 큰 영향을 미쳤다. 김 전 회장은 오래전부터 AI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2019년 카이스트 ‘김재철AI대학원’ 설립에 사재 500억 원을 쾌척한 바 있다. 이어 지난 10월 1일에는 서울대학교에 250억 원을 기부하며 AI 인재 육성에 대한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서울대는 이 기금을 토대로 2026년 ‘김재철AI클래스’를 열어 차세대 인재를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철학은 그룹 경영진 전반에도 자연스럽게 확산돼 있었다. 박종성 CIO는 “식품, 물류 같은 전통 산업에서도 AI가 곧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덕분에 방향을 설득하기보다 실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경영진의 분명한 신뢰와 지원은 DT본부에게 큰 도움이 됐다. 이와 함께 박종성 CIO가 IT 현장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도 실행력을 높이는 배경이 됐다. 삼성SDS에서 개발자로 경력을 시작한 박종성 CIO는 25년 이상 ERP, 오라클·SAP 같은 글로벌 솔루션, AI 기반 사업 등 글로벌 신사업 부문을 이끌며 기술 업계의 굵직한 변화를 경험해 왔다. 박종성 CIO는 “다양한 산업군을 넘나들며 굵직한 IT 트렌드 변화를 배운 덕분에 신기술 도입의 리스크를 가늠하고 실행 방향을 빠르게 정하고 새로운 기술 도입을 곧바로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CIO 개인의 경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고경영진이 분명한 비전을 갖고 지원했기에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그 경험과 실행이 구체화된 결과물인 동원GPT는 이제 임직원 절반 이상이 일상 업무 시간의 약 30%를 사용하는 생성형 AI 도구로 자리 잡았다. MS 애저 오픈AI API를 기반으로 구축된 동원GPT는 보고서 초안 작성, 장문 이메일 요약, 회의록 요약, 해외 계약서 번역, 자료 검색 등 실제 업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박종성 CIO는 “동원GPT는 그룹 차원에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곁에 두고 쓰는 도구가 됐다”라며 “임직원이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이메일이나 보고 체계에 녹아든 덕분에 빠른 정착이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동원GPT 구축 프로젝트를 총괄한 조직인 DT본부에는 현재 120여 명의 전문가가 소속돼 있다. DT본부는 생성형 AI 외에도 동원그룹의 기술 기반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데, 박종성 CIO 합류 이후 또 다른 주요 프로젝트로 ERP 통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에 시작해 2026년 완료될 예정인 ERP 통합 작업은 각 계열사가 별도로 사용하던 시스템을 하나로 묶어, 그룹 차원의 손익을 산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중복된 라이선스 비용을 줄이며 데이터의 투명성을 강화할 예정이다. 박종성 CIO는 “ERP 같은 기반 시스템이 튼튼해야 그 위에서 GPT와 데이터 분석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라며, AI 도입과 기존 IT 인프라 개선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과제라고 설명했다.
생성형 AI의 토대를 마련하다
ERP 통합 프로젝트에서도 알 수 있듯, 사내 생성형 AI 모델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올바르고 명확한 데이터 수집이라는 중요한 전제가 갖춰져야 한다. 동원그룹 DT본부 역시 AI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데이터의 질’을 점검했다. 그러나 실제로 ERP, MES, 그리고 각 계열사의 개별 시스템에서 쏟아지는 데이터는 정제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고, 이를 곧바로 활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DT본부는 동원GPT 구축 이후 데이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ERP 같은 기반 인프라를 재구축하는 동시에 그룹 전반의 데이터를 하나의 구조로 엮는 대규모 통합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최근 ‘데이터 공통 플랫폼(DAP)’이 완성됐다. 목표는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모든 계열사가 동일한 기준으로 데이터를 관리 및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박종성 CIO에 의하면 현재 배포된 동원그룹 DAP는 그룹 전반의 경영·생산·재무 데이터를 바탕으로 140개에 달하는 실시간 전략 대시보드를 제공하고 있다. 계열사 CEO와 CFO들은 매출·재고·원가 현황을 즉시 확인하고, 나아가 GPT와 연동해 실시간으로 질문을 던지고 의사결정에 도움을 받고 있다.
아울러 동원그룹은 최근 데이터브릭스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데이터 분석 역량을 고도화하고 있다. 데이터브릭스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 및 분석할 수 있는 통합 환경을 제공해, 향후 대시보드 생성 속도를 높이고 AI 모델의 학습 및 확장을 지원할 예정이다. 동원그룹은 데이터 기반의 신규 서비스와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해 시장 대응력과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박종성 CIO는 “처음 동원에 합류했을 때는 AI 모델보다 데이터 통합이 먼저 해결돼야 할 과제였다. 데이터브릭스 기반 플랫폼은 앞으로 동원그룹이 데이터 중심 경영 체제로 전환하는 데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과의 소통 난제, 우선순위와 ROI로 풀어내다
AI와 데이터 플랫폼이 동원그룹의 업무 혁신을 이끌고 있지만, 현장과의 소통 확보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식품 생산부터 물류, 건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 영역을 아우르는 동원그룹은 사무직 외에도 수많은 현장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만큼 설비 다운타임의 원인 기록이나 불량률 분석 정보와 같은 생산 라인 데이터가 매우 중요하지만, 시스템 간 연계가 미흡하거나 데이터 입력이 표준화되지 않아 수집에는 한계가 따르고 있다.
특히 생산 라인에서 교대 근무를 하는 직원의 경우,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바뀌거나 데이터 입력 방식이 복잡해질 때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박종성 CIO가 현장에 더 신중히 접근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세심한 사전 인터뷰와 파일럿 테스트를 거쳐 현장 직원이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라 하더라도 잘 쓰이지 않게 된다”라고 말했다.
박종성 CIO는 현장의 문제를 단순히 기술 도입으로만 풀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이에 동원그룹은 ROI 프레임워크를 도입해 현장의 필요와 우선순위를 체계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기술을 무작정 적용하기보다, 각 프로젝트의 비용과 효과를 수치화해 실질적인 개선이 가능한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이다. 또한 구현된 기술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그룹 전체로 확대 적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
이 접근법은 실제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식품 라벨의 유통기한을 자동 검증하는 AI 솔루션과 유리병 용해로의 온도를 비전 인식으로 모니터링하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두 기술 모두 도입 초기부터 긍정적인 현장 반응을 얻었으며, 실제로 업무 효율성과 품질 관리 수준을 함께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종성 CIO는 “AI와 같은 신기술은 겉으로 드러나는 기능보다 실질적 성과가 중요하다. 현장의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명확히 파악해 점진적으로 성과를 쌓아나가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임직원 모두가 AI 및 데이터 전문가”
박종성 CIO는 동원그룹 DT본부가 추진하는 신기술 도입 프로젝트가 이제 개별 현장을 넘어 그룹 전체로 확산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신기술이 조직 전반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통합 솔루션뿐 아니라 계열사 간 기술 이해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사업군을 보유한 동원그룹의 특성상 계열사별 IT 활용 수준의 차이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에 DT본부는 사내 인재 양성이라는 과제에도 집중하고 있다. 모든 계열사가 동등하게 IT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DT본부의 중요한 미션인데, 인재 격차가 심화되면 기술 도입의 효과도 일부에만 돌아가게 된다는 판단에서다.
박종성 CIO는 지난해부터 개최한 사내 프롬프트 경진대회가 특히 높은 직원 참여 효과를 보였다고 귀띔했다. 그는 “사내 경진대회는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직원들이 스스로 AI를 탐구하고 즐기게 만든 계기가 됐다.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다”라고 강조했다. 올해부터는 이 경진대회를 카이스트와 협력해 대학생, 취준생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확대했다.

Jongsung Park, DT Division CIO, Dongwon
Dongwon
사내 프롬프트 경진대회와 같은 참여형 프로그램과 동시에, 보다 체계적인 인재 양성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데이터브릭스와 함께 진행하는 ‘동원 CDS(Citizen Data Scientist) 아카데미’다. 사내 데이터 과학자를 육성하는 이 교육 과정은 단순한 도구 사용법을 익히는 수준을 넘어, 직원들이 스스로 데이터를 불러와 분석하고 AI를 활용해 결과를 요약 및 시각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시 말해 현업 담당자가 단순한 데이터 소비자를 넘어 직접 데이터 분석을 수행하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앞으로 2년간 총 2,000명의 인재를 양성할 계획인 CDS 아카데미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박종성 CIO는 전했다. 그는 “원래 더 작은 규모로 기획됐지만, 수요가 많아 목표 인원을 확대했다. 플랫폼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결국 사람이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CDS 아카데미는 임직원 모두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문화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AI가 바꾸는 업무 지형, 동원의 다음 5년
이처럼 사내 교육과 참여 프로그램이 지속되면서 AI 및 데이터에 대한 조직 내 인식도 한층 뚜렷하게 변화했다. AI와 데이터를 ‘특별한 과제’가 아닌 업무의 기본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종성 CIO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꼭 AI를 써야 하느냐”라고 묻던 직원들이 이제는 각자의 업무에 맞는 활용 방안을 먼저 제안하고 있다면서, “현재 동원그룹은 AI의 가능성을 시험하던 단계를 지나 정착기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서 있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박종성 CIO는 이런 내부 변화를 더 큰 흐름의 일부로 읽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AI는 IT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생태계 전체를 바꿀 패러다임이자 메가트렌드다. 머지않아 기업들은 신입 인재를 늘리는 대신 AI 어시스턴트를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그는 주니어 개발자와 단순 사무직 일자리가 빠르게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면서, 3~5년 내에 사무직 전반에서 구조적 변화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위기의식 속에서 동원그룹은 전통 제조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실시간 대시보드와 GPT를 결합해 임직원 누구나 데이터를 쉽게 다루고, 직관이 아닌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박종성 CIO는 “AI는 조만간 이메일이나 보고서 요약을 넘어 생산·물류·신사업 전반까지 확산될 전망이다. 동원그룹은 앞으로도 이 흐름을 선도해, 데이터와 AI를 핵심 엔진으로 삼는 ‘하이테크 그룹’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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