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전문성을 넘어 비즈니스 통찰력과 네트워크를 갖춘 CIO만이 이사회 문을 두드릴 수 있다.

IT 리더의 이사회 진출 기회가 점차 열리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기술 전문성만으로는 그 문을 통과하기 어렵다.
오랜 기간 최고정보책임자(CIO)로 활동한 에드위나 페인은 이사회 진출을 목표로 삼으며, 과거 IT 리더직을 얻을 때와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택했다. 페인은 먼저 자신의 인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함께 일했던 모든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그리고 이사회 구성원을 목록으로 만들고, 이들이 속한 이사회까지 엑셀 시트에 정리해 잠재적 연결고리를 분석했다. 그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한 금융서비스 기업의 CEO가 애틀랜타 연방주택대출은행(Federal Home Loan Bank of Atlanta) 이사들과 연결해 주었고, 결국 그녀는 그곳의 이사회 멤버로 합류했다.
줄리 컬리번 역시 다른 길을 걸었다. CIO, CTO, CHRO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온 그녀는 경영진의 이사회 진출을 지원하는 비영리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두 번째 이사회 임명은 임원 전문 서치펌을 통해 이뤄졌다.
경로는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점점 더 많은 IT 리더들이 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스펜서 스튜어트(Spencer Stuart)의 ‘보드 인덱스(Board Index)’에 따르면, 2024년에는 기술 및 통신 분야 출신의 신규 이사가 다른 모든 배경 출신을 앞질렀다.
그렇다고 이사회 진출이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CIO가 기술적 전문성으로 주목받지만, 실제로 문을 여는 것은 비즈니스 통찰력이다. 스펜서 스튜어트의 기술 및 디지털 담당 부문을 이끄는 에드 스타돌닉은 “이사회에서 모든 대화가 기술에 관한 것은 아니다”라며 “CIO는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에 걸친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사회와 C레벨의 차이
CIO의 이사회 진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 여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예비 이사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 내게 맞는 선택인가’다.
스타돌닉은 “이사회는 운영 업무의 연장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CIO가 흔히 겪는 문제 중 하나는 경영과 거버넌스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사로서의 역할은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지, 감사를 하거나 현직 CIO를 지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사회는 실행보다는 전략, 거버넌스, 감독을 담당하는 자리다. 오랜 시간 운영 중심의 결과를 이끌어온 기술 리더에게 이런 변화는 낯설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IT 리더 가운데 상당수는 기술 역량이 이사회 진입의 핵심 열쇠라고 생각하지만, 스타돌닉은 이에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AI, 사이버보안, 디지털 전환은 분명 이사회에서 중요한 이슈이지만, CIO가 진정으로 고려 대상이 되려면 균형 잡힌 비즈니스 감각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적인 IT 배경, 예를 들어 ERP나 인프라 중심의 경험만 가진 CIO라면 이사회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즉, 기술 중심의 깊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사회는 보다 폭넓은 역량과 비즈니스 이해도를 원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CIO의 기회가 점차 줄어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줄리 컬리번은 “위험 관리 측면에서 기술 리더십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순수한 기술만으로는 독립적인 이사 자리를 확보하기 어렵다”라며 “CIO가 추가적인 비즈니스 역할을 병행할 때 이사회 진출에 유리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또 다른 현실적 장벽은 ‘접근성’이다. 페인이 보여준 것처럼, 네트워크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모든 IT 리더가 이런 기회를 열어줄 인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스타돌닉은 “CIO가 이사회에 합류하는 경우 대부분 네트워크를 통한 연결의 결과”라며 “이는 단순한 운이 아니라, 적극적인 네트워킹을 통해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결국 CIO가 이사회 문을 두드리기 위해서는 기술 전문성을 넘어, 전략적 비즈니스 감각과 폭넓은 네트워크가 필수 요건이다.
이사회 진출을 목표로 하는 CIO라면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단계들이 있다.
- 이사회의 역할을 이해하라
첫 번째 단계는 사고방식의 전환이다. 거버넌스와 경영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스펜서 스튜어트의 에드 스타돌닉은 “비영리단체나 자문위원회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를 통해 이사회가 기술 관련 주제에 대해 어떤 수준의 사고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또 경영진의 역할과 거버넌스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다”라며 “이 차이는 이사회에 처음 합류하는 사람에게는 꽤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에드위나 페인에게 이사회 진출은 익숙한 CIO 네트워크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내 주변에는 훌륭한 CIO 동료들이 많았지만, 그들이 내게 이사회 기회를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CIO는 새로운, 혹은 ‘다음(next)’ 네트워크를 의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줄리 컬리번 역시 이를 지지하며, 이사회 진출을 위한 네트워킹은 ‘문을 열어줄 리더’를 찾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 지식을 확장하라
줄리 컬리번은 특정 자격증 취득보다는 네트워킹과 학습을 병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미국기업이사협회(NACD)와 같은 기관을 통해 이사회 관련 주요 주제에 대한 전문성을 높였다. 다만 그는 “이론적 교육보다 실제 현장에서 쌓은 경험의 깊이가 이사회 후보로서의 경쟁력을 더 높인다”며 “프로그램 수료보다 직접적인 실무 경험이 더 큰 자산이 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 전문성을 넓혀라
이사회는 단일 기능 영역의 깊이보다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에 대한 폭넓은 통찰을 원한다. 스타돌닉은 CIO가 전략적 사고, 성과 중심 태도, 협업과 영향력 발휘 역량을 활용해 조달, 공급망, 공유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추가적인 책임을 맡아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런 리더십 역량이 넓은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며 “그런 경험이 CIO의 이사회 이력서와 신뢰도를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 서두르되 인내하라
페인은 CIO가 은퇴 후 이사회 진출을 준비하기보다 현직 시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사회는 ‘현재성’을 중요하게 본다. 은퇴 후 1~2년이 지난 뒤에는 여전히 최신 트렌드를 잘 알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녀는 CIO가 CEO와의 논의를 통해 이사회 참여 의사를 미리 밝히면 예상치 못한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이사회 선임 절차는 일반적인 임원 채용보다 훨씬 길다. 스타돌닉은 “이사회 진출을 원한다면, 그것을 단기 목표가 아니라 수년에 걸친 여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CIO의 이사회 진출은 ‘기술 리더에서 전략적 경영 파트너로의 전환’이다. 이 과정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명확한 목표 의식과 꾸준한 네트워킹, 그리고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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